셀리눈테 역사와 전쟁사!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셀리눈테(Selinunte)의 정확한 위치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주 남서해안 일대입니다. 시칠리아주는 8개의 신전이 자리잡고 있으며 3대 그리스 유적 도시 중 하나 입니다. 지금도 고대 그리스 건축물과 조각품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요. 야생화가 만발하는 봄이 가장 방문하기 좋은 시기 입니다.

■ 셀리눈테 역사

셀리눈테는 기원전 628년 메가라 히블라이아(Megara Hyblaea)에서 온 그리스인들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그리스인들은 지중해와 흑해지역으로 식민지를 확장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과정에 당연 현지 주민들과 갈등이 있었으리라 예상되는데요. 그러나 셀리눈테 식민지와 관련된 전쟁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당시 이 지역은 비옥한 토지와 전략적 위치로 인해 그리스인들의 관심을 끌었는데요. 기원전 6세기 경 변영을 맞이한 셀리눈테는 8개의 신전을 건립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원 전 409년, 카르타고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그 후 기원전 4세기에 재건되었지만 점차 쇠퇴하였고, 결국 기원 후 7세기에 아랍인들로 인해 완전 폐허가 되었습니다.

■ 그리스인들이 셀리눈테를 식민지로 선택한 이유

셀리눈테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식민도시 였습니다. 그리스인들이 셀리눈테를 식민지로 둔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셀리눈테의 지질학적 위치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는데요. 셀리눈테는 그리스 본토와 가깝기에 교통과 무역에 있어 유리한 장점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천연자원 또한 섬점하고 싶은 이유였습니다. 또한 그리스인들의 지중해 진출 목표에 있어 셀리눈테는 전략적 요충지로도 중요했습니다. 실제 셀리눈테를 통해 그리스인들의 문화와 문명을 지중해지역으로 확산시킬 수 있었는데요. 그리스 본토와의 교역을 통해서도 경제적 이득을 창출했기에 그리스인들은 셀리눈테를 식민지로 두었습니다.

■ 셀리눈테인들의 삶

셀리눈테인들은 그리스어를 사용하였고 그리스문화를 접하며 살아갔습니다. 셀리눈테는 비옥한 토지와 온화한 기후를 안고 있었기에 대부분의 셀리눈테인들은 농업에 종사를 하였는데요. 대표적인 농작물로는 올리브와 포도, 곡물 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농업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위에서도 설명한 듯 셀리눈테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기에 상인들 또한 활발히 활동하였습니다. 또한 화려한 신전과 조각상, 극장들을 보면 이들이 얼마만큼 문화, 예술을 향유하며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셀리눈테인들의 종교

셀리눈테인들의 종교는 고대 그리스의 전통적인 다신교 신앙을 따랐습니다. 이들은 여러 신들을 숭배하였고 각 신들은 다양한 측면에서 도시와 사람들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숭배했던 신들에 대해 알아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아폴론

셀리눈테의 주요 신전만 보더라도 어떤 신들을 믿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아폴론’ 신전이 그러한데요. 아폴론은 태양과 예언, 음악과 치유의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다음은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입니다. 이 신들은 농업과 풍요의 여신입니다. 특히 농업사회에 있어 신은 절대적인 믿음의 대상이 되었을 텐데요.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를 위한 신전 또한 자리잡고 있습니다.

◐ 헤라클레스

많은 사람들이 익히 들어봤을 신으로 헤라클레스가 있습니다. 헤라클레스는 영웅적 존재로 힘을 상징하는데요. 헤라클레스를 기리는 신전 또한 셀리눈테 유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 제우스

제우스는 그리스 신화의 최고 신입니다. 천둥과 번개의 신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신들사이에도 왕으로 숭배될 정도의 막강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위 신들과 달리 셀리눈테에 제우스신전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는 기록이 없기에 존재했는데 없어진 건지, 원래부터 없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알 수 없습니다.

■ 셀리눈테 건축물 특징

셀리눈테의 건축물은 특징이 있는데요. 돌로 만들어진 조각과 장식들이 장관입니다. 건축물의 대부분이 ‘도리스양식’으로 만들어졌는데요. 도리스 양식은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도리스 양식’이란?

도리스 양식은 고대 그리스 건축의 3대 양식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가장 오래된 양식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는 기원전 6세기경부터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기원전 4세기경 이오니아 양식과 코린트 양식이 등장하면서 점차 쇠퇴를 맞이하게 됩니다. 도리스양식이 가장 꽃을 피웠던 시기는 기원전 5세기 입니다. 그 이후로도 도리스양식은 로마시대 건축물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는데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느낌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부분적으로 살펴보면 기둥의 경우 짧고 굵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둥 상단에 간단한 장식만 있는 모양을 하는데요. 기둥머리의 경우 주로 직선형태를 하고 있으며 지붕 또한 단순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장식에 있어서도 유사합니다. 화려함 보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모양을 띄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입니다. 기원전 5세기에 건립된 파르테논 신전은 대표적인 도리스양식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 외에도 포세이돈 신전과 세스토스 아고라 신전 등이 있습니다.

■ 셀리눈테 전쟁사

셀리눈테에서는 주변 도시국가들과 여러차례 충돌이 있었습니다. 특히 인근의 세게스타(Segesta)와의 전쟁은 빈번했습니다. 이 두 도시간 전쟁은 자원과 영토를 둘러싼 것이었는데요. 이 대립에 있어 때로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이나 카르타고와 같은 강대국들이 개입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알려진 셀리눈테의 가장 유명한 전쟁은 카르타고와의 전쟁입니다. 이를 통해 지금의 시칠리아가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카르타고 사이의 경쟁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원전 409년 카르타고는 한니발 막시모(Hannibal Mago)의 지휘 아래 셀리눈테를 공격했습니다. 이 공격은 셀리눈테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결국 도시는 파괴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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