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플라워호(Mayflower) 플리머스 식민지로의 항해! 청교도 필그림과의 관계는?


■ 메이플라워호

메이플라워호는 플뢰위트 선입니다. 플뢰위트선이란 제작 시 화물선으로 만들어졌으나 범선으로 사용된 선박을 의미하는데요. 메이플라워호가 화물선으로 역할했던 상황을 본다면 프랑스와 노르웨이, 독일, 스페인 등의 유럽 여러 나라와 영국 사이에 포도주를 주로 운반했습니다. 메이플라워호의 모항은 런던 로드히스였으며, 1623년 ‘러드히스’에서 해체되었습니다. 현 시대에서 공감할 수 없는 놀라운 점이 있다면 배의 제원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인데요. 추정에 따르면 무게가 180톤이며 그 길이가 27.4~33.5m, 폭은 7.6m로 알려져 있습니다. 승무원은 25~30명 정도였으며 1609년부터 1622년까지의 선장은 ‘크리스토퍼 존스’였습니다. 그 유명했던 대서양 횡단 또한 그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 바 있습니다.

■ 필그림 파더스

메이플라워호는 1620년, 잉글랜드 출신 102명을 북아메리카 대륙!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까지 수송한 배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들 102명을 필그림 파더스! 순례자라고 불렀으며 당시 두 번째로 큰 이민단 이었는데요. 잠깐 여기서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에 대해 설명드리자면 영국의 분리주의자들로써 1620년 미국으로 건너가 플리머스 식민지 초기에 정착한 사람들입니다. 필그림 파더스의 인구구성을 살펴보면 40%가 성인이었고 나머지는 그들의 가족들 이었습니다. 플리머스 식민지는 1620년부터 1691년까지 북아메리카에 개척된 잉글랜드 식민지의 선구지역이 되었습니다. 한참의 전성기로 본다면 매사추세츠주 남동부 대부분을 영위할 정도 였다고 하는데요. 비록 그 기간은 길지 못했지만 오늘날까지의 미국문화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 청교도(Puritans)

필그림 102명 중 35명이 청교도(Puritans)였으며 청교도들은 영국 성공회와의 갈등과 종교적 박해를 피해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교도는 16세기에서부터 17세기에 걸쳐 활동한 개신교도들 입니다. 그들은 로마 카톨릭교회의 교황제도 중심주의로부터 영국 국교회의 순결과 복음 중심주의를 추구했습니다. 이들이 영국국교회에 반기를 든 것은 영국국교회가 개신교의 정신을 강조하면서도, 서방교회의 제도중심주의를 받아들인 것에 대한 점 입니다. 청교도인들은 도덕적인 순수성을 추구하였는데요. 낭비와 사치는 배격하고 근면을 강조하며 살았습니다. 신학적으로는 인위적 권위와 전통을 싫어했고 성경에 따른 삶을 지향하였습니다. 이들이 잉글랜드 노팅엄셔 스크루비 마을에 살고 있을 당시, 1604년 햄프턴 회의에서 영국의 왕 제임스 1세가 청교도와 개신교 분리파는 올바르지 않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이로인해 요크 대주교는 몇 사람의 신도 집을 습격하여 강제 감옥수감까지 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신도들이 잉글랜드를 떠나 정착했던 곳은 암스테르담과 레이던 이었는데요. 레이던의 경우 산업활동의 중심지였기에 필그림들이 적응하기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청교도들이 했던 미사를 살펴보면 신부와 수도사들에 의해 주체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성찬, 성사례,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의 중보 등! 천주교의 예배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재밌는 점이 있다면 추수감사절에 대한 기원과 필그림 파더스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인데요. 그들이 신대륙에 도착한 후 첫 수확을 기념했던 일이 추수감사절의 시작이었으며 현재의 중요 명절로 자리잡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 메이플라워 서약

메이플라워호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메이플라워 서약(Mayflower Compact)’ 입니다. 1620년 11월 21일! 배에 탑승했던 사람들은 매사추세츠에 도착하기 전, 배에서 서약을 체결하게 되며 이것이 메이플라워 서약입니다. 총 41명이 서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영국왕에 충성을 다하며,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할 것을 기약하고 자치사회를 형성하여 질서와 안전을 도모하며 평등한 법률을 만들어 관제를 정한 다음 여기에 종속할 것을 맹세한다!”
이 메이플라워 서약은 다수의 자유의지에 따른 정부설립을 결정한 것으로 민주주의 정치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데요. 이런 식민지의회의 설치와 자치제 형성은 그 뒤에 건설된 다른 식민지에도 도입이 되었습니다. 질서와 안녕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하나의 시민정치제를 만들고, 그 안에서 필요한 법률과 공직을 제정하여 이에 복종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현재 본 서약의 원본은 분실되어 찾을 수는 없다고 합니다.

■ 메이플라워호의 항해

본 메이플라워호는 잉글랜드에서 부터 66일간의 항해를 끝으로 같은 해 11월 11일 케이프코드의 프로빈스타운에 입항하였습니다. 항해에 있어서는 사실 항로를 이탈한 운항이었습니다. 더불어 66일의 항해 동안 질병 등 이유로 결코 쉽지 않은 이동이었는데요. 원래의 목적지는 허드슨강 하구 였으며 그 곳은 현재 뉴욕시 인근에 해당합니다. 1619년 6월 필그림은 런던 버지니아 회사로 부터 허드슨강 하구에 정착하는 권한을 부여받는 토지권리증서를 얻은 바 있습니다. 입항 후 선박은 수리되었고 12월 21일 매사추세츠 주 연안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메이플라워호는 그 해 겨울을 지나 4월 5일 이민자들을 남기고 런던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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